실용문은 왜 이렇게 어렵게 쓸까?: 읽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문서들의 진짜 문제, 비문학
우리는 일상 속에서 수많은 실용문을 접한다.
학교나 직장 등 사회 속에서 수많은 행정 안내문, 회사 공지사항, 학교 가정통신문, 병원 설명서, 제품 매뉴얼 등의 문서는 사용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정작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말은 많은데, 내가 뭘 해야 하는 건지 안 보여요.”, “읽다가 포기했어요.”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왜 읽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문서가 이렇게 많을까?
이번 글에서는 실용문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와, 그 안에 숨겨진 비문학적 요소의 문제,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배워야 할 실용문 독해와 쓰기의 본질에 대해 살펴본다.
실용문이란 무엇인가?
먼저 실용문의 정의부터 짚어보자.
실용문이란?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된 문서다.
정보 전달, 행동 지시, 절차 안내 등 실용적인 목적이 핵심이다.
실용문 종류 | 예시 |
공지문 | 학교 일정 안내, 행사 일정, 공공기관 발표 |
설명서 | 제품 사용법, 설치 매뉴얼, 안전 수칙 |
동의서·신청서 | 개인정보 동의서, 지원서, 신청 양식 |
가정통신문 | 학부모 대상 공지, 교육 일정 안내 |
행정 안내문 | 정부 정책 안내, 주민센터 서류 지침 |
실용문은 반드시 다음 세 가지 기능을 충족해야 한다.
- 정확한 정보 전달
- 수용자의 이해를 고려한 구성
- 실제 행동 유도 가능성
하지만 현실의 실용문은 위 기능을 종종 외면한다.
실용문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실용문은 원래 쉬워야 한다.
하지만 많은 실용문이 오히려 독자의 이해를 방해한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왜 실용문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일까?
①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표현
“해당 사항에 대해 검토 후 신속한 조치를 취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첫 째, 무슨 말인지 모호한 점이 있다.
위 예시글을 통해 누가, 언제까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건 인지 파악이 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② 핵심 내용이 분산되어 있다
정보가 핵심 없이 나열돼 있어, 독자는 끝까지 읽어도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기 어렵다.
③ 문장 구조가 비문학 원리에 어긋난다
- 주어·서술어 불일치
- 중복 표현
- 부정확한 지시어 사용
- 긴 수식어가 주제를 가려버림
예:
“해당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의 결과와 그에 대한 만족도,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에 관한 검토 보고서를 제출해 주세요.”
→ 위 예시를 보면 글의 핵심은 “검토 보고서를 제출해 주세요”인데, 앞부분이 너무 길다는 문제점을 알 수 있다.
④ 쓰는 사람 중심의 작성
문서를 쓰는 사람은 익숙하지만, 받는 사람은 생소하다.
그러나 문서 작성자는 그것을 고려하지 않는다.
읽는 사람을 고려한 실용문은 무엇이 다른가?
좋은 실용문은 다음 요소를 갖춘다.
요소 | 설명 |
명확성 | 누구, 무엇, 어떻게가 분명하다 |
간결성 | 불필요한 반복과 수식어가 없다 |
구조화 | 제목, 소제목, 표, 번호 등을 통해 시각적으로 구조가 보인다 |
행동 유도성 | 독자가 읽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히 알 수 있다 |
수용자 고려 | 독자의 배경지식과 입장에서 설명한다 |
예시 비교:
나쁜 예 | 좋은 예 |
“관련 부서의 요청에 따라 해당 절차를 시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인사팀 요청으로 7월 5일까지 휴가 계획서를 제출해주세요.” |
“확인 후 조치 바랍니다.” | “파일 누락 여부를 확인한 후 이메일로 다시 보내주세요.” |
이처럼 실용문은 문학보다 어렵지 않아야 하고, 설명문보다 더 직관적이어야 한다.
실용문 속 비문학 독해력의 중요성
실용문도 비문학 텍스트의 일종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용문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비문학 독해 전략이 필요하다.
(1) 중심 문장 찾기
대부분의 실용문은 핵심 문장을 첫 문장이나 마지막 문장에 배치한다.
중간의 수식어에 주의하지 않으면 본론을 놓치기 쉽다.
(2) 정보의 구조 파악
제목, 소제목, 글머리 기호, 문단 구분 등을 활용하여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3) 명시된 조건과 지시 구분
날짜, 기한, 필수 제출 항목, 예외 조건 등은 따로 표시해두는 습관이 필요하다.
시험 지문처럼 체크하면서 읽는 독해 태도가 실용문에도 유효하다.
우리는 어떤 실용문을 만들어야 하는가?
학생, 공무원, 직장인, 자영업자 모두 실용문을 ‘읽는 사람’이자 ‘쓰는 사람’이다.
따라서 단순히 ‘정보를 나열’하는 수준이 아니라 독자의 행동을 고려한 글쓰기가 필요하다.
실용문 쓰기의 기본 원칙:
-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를 먼저 정리
- 읽는 사람의 관점에서 재작성
- 복잡한 말보다 쉬운 말
- 핵심 정보는 강조하거나 표, 리스트로 구조화
실용문 사례 분석: 진짜 이렇게 써야 할까?
(1) 회사 공지 예시
원문
“전사 구성원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2025년 2분기 인사 발령 및 직무 재배치를 시행하고자 하오니 인트라넷 게시판 공지사항을 숙지하시고 개별 대응 바랍니다.”
문제점
- 핵심 정보가 빠져 있다.
- '언제', '무엇을', '누가' 해야 하는지 구체적이지 않다.
- 독자(직원)는 이 글을 읽고 뭘 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개선 예시
“2분기 인사 발령은 6월 5일 자로 적용됩니다.
본인의 발령 여부는 인트라넷 > 인사관리 > ‘발령현황’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확인 후 6월 10일까지 이메일로 이의제기서를 제출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개선하면, 독자는 행동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비문학적 독해 대상 텍스트로서 실용문의 목적성과 명확성이다.
(2) 병원 안내문 예시
원문
“당 병원은 감염병 예방 수칙에 의거하여 전 방문자 대상 체온 측정 및 문진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번거로우시더라도 협조 부탁드립니다.”
문제점
- ‘방문자’가 누구인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불분명하다.
- 실제 현장에서 혼란을 유발할 수 있다.
개선 예시
“모든 외래·입원 환자 및 보호자는 병원 입구에서 체온 측정 및 증상 확인 문진표 작성을 완료하셔야 입장할 수 있습니다.
병원 출입 시 마스크 착용과 손 소독을 꼭 해주세요.”
정보의 구체화, 명시화, 행동 안내는 비문학 텍스트에서도 기본 중의 기본이다.
실용문 읽기·쓰기의 교육 부재
한국의 학교 교육에서 실용문 교육은 형식적으로만 다뤄진다.
- “공문서 형식 외우기”
- “요구서·신청서 예문 쓰기”
- “수능 실용문 유형 문제 풀기”
이런 식의 접근은 실용문을 실제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 인식하게 만들지 못한다.
학생은 ‘글쓰기’는 해도 ‘읽는 사람’에 대한 고려 없이
틀에 맞춘 문장만 반복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 회사에 가면 문서가 불친절해지고
- 행정기관은 납세자 입장에서 문서를 쓰지 않으며
- 소비자는 제품 설명서를 읽고도 제품을 잘못 조작하게 된다
이 모든 게 교육 과정에서 실용문을 삶과 연결하지 못한 결과다.
국내외 실용문 개선 캠페인 사례
대한민국: 정부24, 국민소통센터
2023년 행정안전부는
“알기 쉬운 공공언어 가이드라인”을 배포하며
공공기관 문서에 다음 사항을 권장했다:
- 어려운 한자어나 외래어 대신 쉬운 표현 사용
- 수혜자 중심의 문서 작성 (예: "지급됩니다" → "받을 수 있어요")
- 항목 구분, 표 사용, 핵심 문장 강조
영국: Plain English Campaign
영국은 1979년부터
Plain English Movement(쉬운 영어 운동)를 통해
정부, 기업, 언론에 다음 원칙을 적용했다:
- 짧은 문장, 간단한 단어
- 수동태 → 능동태
- 독자의 요구를 우선시
- 구체적인 예시와 명확한 절차 안내
그 결과, 공공서비스 만족도가 상승했고 정부 문서의 민원 건수도 감소했다.
실용문 독해력을 키우는 일상 훈련법
방법 1. 공공 안내문 분석하기
주변에서 마주치는 각종 안내문, 엘리베이터 공지, 문자 알림 등을 비문학 지문처럼 분석해 본다.
- 중심 내용 → 요약
- 지시사항 → 정리
- 오류 → 개선안 제시
방법 2. AI 번역된 매뉴얼 찾기
해외 제품 설명서나 FAQ를 번역기로 번역한 문장은 의미가 왜곡된 경우가 많다.
이를 다시 자연스러운 실용문으로 고쳐보는 연습이 글쓰기 실력뿐 아니라 문장 감각도 길러준다.
방법 3. '설명 글’만 모은 스크랩북 만들기
학교에서 받은 안내문, 병원 진료 안내지, 통신사 공지 등 각종 실용문을 모아 분석하는 활동도 추천된다.
이러한 경험은 수능 비문학 실용문 문제를 푸는 데도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
실용문은 우리의 일상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텍스트’다.
하지만 우리는 이 가장 실용적인 글쓰기를 가장 어려운 글로 만들어 버렸다.
- 쓰는 사람은 형식을 따르느라 독자를 잊고
- 읽는 사람은 정보 과잉에 길을 잃는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실용문은 글의 완성도보다 전달력, 이해도, 행동 유도력이 중요하다.
읽는 사람이 읽기 쉬운 글,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글이 진짜 실용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비문학 독해력과 글쓰기 능력이 만나 만들어낸 결과다.